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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낯선 땅, 낯선 죽음-"3D가 아니라 4D죠···죽도록 일했으니까요"
관리자 ㅣ 2022-04-27 ㅣ 306

‘슬로 데스’의 경로

고용허가제로 입국하는 이주노동자는 건강을 입증해야 한다. 신체검사는 물론 악력·배근력 측정까지 받는다. 평균 연령은 2020년 기준으로 27.8세, 별로 아프지 않을 나이다. ‘튼튼한 몸’으로 입국했지만 귀국이 다가올수록 그들의 몸은 망가져간다. 미국의 의료 인류학자인 세스 홈스는 이주노동자의 건강 악화를 ‘슬로 데스(Slow death·서서히 죽어간다)’로 정의했다.

마그노(42)는 8년 전 필리핀에서 왔다. 경기 포천시의 폐플라스틱 공장에서 줄곧 일했다. 이주노동자 4명이 함께 일했다. 평일에는 하루 12시간 노동했다. 토요일 근무도 많았고, 한 달 꼬박 일할 때도 있었다. 평균 근무시간이 주당 70시간을 넘었다. 사장은 미등록 신분인 마그노에게 급여명세서 없이 월급을 줬다.

“3D(Difficult·Dirty·Dangerous,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가 아니라 4D예요. 죽도록(Deadly) 일했으니까요.” 마그노가 말했다. 매일 폐플라스틱 5t을 삽으로 퍼나르고 저어 녹였다. 겨울에는 폐플라스틱이 딱딱해져 힘이 더 든다. “폐플라스틱을 녹일 때 나오는 증기를 마셨더니 눈에까지 염증이 나타나더라고요.” 공업용 마스크도 없이 일했다. 공장에 딸린 기숙사에서 밥먹을 땐 “플라스틱 씹는 맛이 났다”. 2020년 12월19일 오전, 폐플라스틱을 옮기다 쓰러진 뒤 다리를 움직이지 못했다. 뇌경색이 왔다. 현재 왼쪽 몸을 50%만 쓸 수 있다. 지난해 2월 산재 신청을 했지만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주민의 ‘질병 산재’는 통계에 잘 잡히지 않는다. 아프지 않아서가 아니다. 권동희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노무사는 “과로사나 근골격계 질환은 정보 부족 등으로 산재에 접근 자체가 안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루 6시간 넘게 쪼그려 앉은 채 반복 작업을 하다가 몸을 다치고도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귀국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주민의 낮은 질병 산재 접근성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질병 산재 신청을 한 이주노동자는 371명으로 전체 신청자(2만4500명)의 1.5%였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13명뿐이었다. 지난 5년간(2017~2021년) 과로사로 산재를 신청한 외국인은 연평균 27명에 불과했다.


‘아픈 몸’은 누구의 책임인가

일부 한국 주재 공관이나 사업주들은 이주민의 돌연사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곤 한다. “값싼 소주와 삼겹살을 먹고 퇴근한 뒤에도 게임을 하느라 쉬지 못한 탓”이라는 식이다. 장시간 노동도 “돈 벌 욕심에 스스로 몸을 축낸 까닭”이라고 한다. 연교차가 심한 기후도 돌연사의 원인으로 꼽는다. 이들이 가혹한 초과노동으로 내몰리는 구조는 주목받지 못한다.

이주노동자의 ‘낯선 죽음’은 ‘노동 구조’와 관련이 크다. 고용허가제는 과로 노동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오면 4년10개월씩 두 번, 최장 9년8개월 일한다. 체류 기간이 제한된 만큼 있는 동안 최대한 벌려는 욕구가 작동한다.

섹알 마문 부위원장은 “사업주 눈치도 봐야 하고 기간 제한이 있으니 있을 때만큼은 죽도록 달린다”고 말했다. 지난 2월13일 충북 음성의 전자부품 공장에 다니다 숨진 후세인(33·가명)은 ‘주 100시간’ 일했다. 일과 시간에 13시간 근무하고, 퇴근 이후에는 빵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작업환경이 열악하고 사업주의 부당 노동행위가 발생해도 사업장 변경은 극히 제한적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2월 “영세 사업장은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장기간 확보해야 한다”며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제한 조항이 합리적이라고 결정했다. “한국 경제 발전을 위해 이주노동자가 참고 견뎌야 한다는 결론”(정진아 법률사무소 생명 변호사)이었다.

등록 이주노동자마저 꺼리는 저임금·장시간 사업장은 제도 바깥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채운다. 불안정한 신분 탓에 사업주가 무리한 요구를 해도 저항하기 어렵다. 급여가 적으니 퇴근 이후나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한다. 멀쩡한 몸이라도 상하기 쉽다. 코로나19로 일손이 부족해지자 이주민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이 다소 올라갔지만, 일도 그만큼 더 힘들어졌다. 사람이 부족하니 5일 걸리던 일을 3~4일에 끝내려는 농장이나 사업장이 늘었다.
노동조건이 나쁜 사업장들은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노력 대신 ‘노동 피라미드’의 밑바닥에 있는 이주노동자를 갈아넣는 방식으로 버틴다. 사업주들은 “일할 사람이 없다”며 미등록 이주노동자 고용을 묵인해줄 것을 공공연히 요청하고, 당국도 이를 묵인한다. 지난해 7월에는 택배 상하차 업무에 이주민들의 고용을 허가했다.

이주노동자가 ‘질 낮은 일자리’를 메우는 것일 뿐, 내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 구조가 아니다. “과거 내국인이 다치고 죽어가던 일자리를 이주노동자가 채우고 있는 셈”(이보은 웅상노동인권연대 활동가)이다. 농장에서 일하기로 하고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이 작업장을 이탈해 조건이 나은 제조업 공장 등으로 옮겨가는 사례들은 이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내는 장면이다.

“가끔씩 기숙사에서 울어요.” 하산(28·가명)이 말했다. “기계도 고장나면 수리하는데 사람은 고장나도 고쳐주질 않아요.” 하산은 전북의 한 석재공장에서 일한다. 20㎏이 넘는 돌덩이를 하루 1000개 이상 손으로 나르는 고된 작업이다. 짐대(팰릿)와 지게차 사이를 오가며 무릎·허리를 구부렸다 폈다를 종일 반복한다. 관절이 욱신거리면 파스로 버틴다. 야근에 주말근무까지 하니 병원 갈 틈이 없다. “이곳의 이주노동자 70~80%가 일자리를 옮기고 싶어한다”(김호철 성요셉 노동자의집 사무국장). 이주노동자들이 비운 자리는 다른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채운다.


*출처 : 2022.3.30 경향신문

*해당원본글 :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20330060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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