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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안 신부 선종 10주기 추모 기획연재 2
관리자 ㅣ 2020-10-20 ㅣ 828

 

문을 열어준 사제, 도요안 신부님과의 만남


박금옥 베틸라 수녀
서울 포교 성 베네딕도회

 

 

도요안 신부님을 처음 만난 것은 내가 마산 결핵 요양원에서 퇴원한 후 반년이 지난 1973년경으로 기억하고 있다. 당시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를 새로 시작해야 할 시점이었다. 사무실과 사무원이 필요하다고 하여 마침 병후에 휴양하고 있던 내가 이 사무직을 맡게 되었고 영등포에 있던 살레시오 청소년 센터의 도요안 신부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 당시 도요안 신부님은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이었고 살레시오 수도회의 청소년 센터를 맡고 계셨다. 도요안 신부님이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를 시작해서 여자수도회 총원장 국제연합회의(Union of International Superiors General, UISG)의 지부가 되도록 해야 하는 일을 도와주셨기 때문에 사무실과 책상을 하나 마련해 주셨다.

 

도요안 신부님은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업무뿐 아니라,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의 일로 김수환 추기경님을 많이 도와드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김수환 추기경님이 자주 센터에 오셨고 나는 추기경님과도 낯을 익히게 되었다. 우리 수녀원에서 수련소와 병원사목만 하다가 결핵 요양원에 입원했던 나에게는, 도요안 신부님이 세계교회를 열어서 보여주는 한국교회의 대문과 같았다. 그뿐만 아니라, 노동사목에 대해서도 눈을 뜨게 해 주셨다.

 

 

내가 1974년 마닐라에 있는 동남아사목연수원(EAPI)으로 연수를 하러 가게 되었을 때, 도요안 신부님은 한국에 돌아오면 같이 노동사목을 하자며 손가락을 걸고 맹세하자 하셨고, 나는 서슴없이 손가락을 걸어서 맹세하고 마닐라로 떠났었다.

 

2007년 3월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주관하는 국내 이주사목 연수에 강의 차 참석하는 필리핀 스칼라브리니 이주센터의 파비오 신부(Padre Fabio Baggio, C.S)의 강의를  통역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도요안 신부님을 두 번째로 만났다. 33년 만에 만나게 되었는데, 도요안 신부님은 손가락을 걸고 했던 맹세 이야기를 하시면서 너무 오래 걸렸다고 농담을 하셨다. 도 신부님의 기억력에 놀랐고, 기억해 주셔서 고마웠다.

 

 

이번에도 도요안 신부님은 내게 한국 교회의 대문이셨다. 보다 나은 세계운동(Movement for a Better World)과 성령 쇄신 운동을 도와주는 일을 하면서, 내 나름으로는 나도 세계교회에 열려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도요안 신부님은 전 세계의 32개국에서 이주민과 피난민들을 위해서 일하는 스칼라브리니안 선교회(Scalabrinian Missionaries)를 처음으로 한국교회 안으로 불러들이신 것이었다. 스칼라브리니안 선교회는 1887년에 이탈리아에서 창설된 수도회이다. 전 세계적으로 노동자들의 이주 물결이 거세지던 때에, 한국 또한 88 올림픽 이후 몰려드는 이주 노동자들과 결혼 이민으로, 알아야 할 것도 많고 할 일도 많던 때였다.

 

앞선 만남들 이후 세 번째 만남에서 신부님은 어떤 모습일까? 언젠가 내가 죽으면 도요안 신부님이 천국의 대문에서 나를 반갑게 맞아 안내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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