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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안 신부 선종 10주기 추모 기획연재 4
관리자 ㅣ 2020-10-30 ㅣ 819

도요안 신부님과 못다 한 추억 나눔


박수철 그레고리오
살레시오 협력자, 前 노동사목위원회 전문위원

 10년 만에 꺼내 보는 추도사는 여전히 별리의 슬픔이 남아있어 한 번에 읽어 내려가기 어렵다. 당시에도 도요안 신부님을 보내드릴 일을 감당할 수 없어서, 밤새 써 내려간 추도사를 결국 선배 협력자가 낭독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10년 전에도 지금도 우리 가슴에 남아있는, 식지 않는 애정의 근원은 신부님께서 남겨주신 어떤 유산 때문일까 다시 반문하게 된다. 이제는 담담히 사부곡(思父曲)을 써 내려갈 시간이 된 것 같다.


 우리는 대부분 소중하게 만난 사람의 마지막으로 만난 모습을 가슴에 담고, 무수한 기억의 편린 속에 남아있는 각자의 추억은 다르게 간직한다. 나는 도요안 신부님의 환한 미소와 포근한 품을 떠올리면서도, 정의롭고 낮은 곳에서 함께하셨던 모습을 기억한다. 원칙을 중시하지만, 각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어려움도 수용하셨던 세심한 마음도 하나하나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20여 년을 도요안 신부님과 함께해온 나는 그 분과의 긴 만남을 기억한다. 응답하라 1988년에 대림동 살레시오 수도원에서 처음 만난 신부님은 50대 초반의 “엉클 존”이었고, 젊은 열정이 그분의 혈관 속에서 용솟음치고 있었다. 당시에 신부님은 강한 흡인력으로 젊은 청년들을 당신의 청소년 사업에 초대하신 삼촌이셨다. 이렇게 대림동을 무대로 하여 신부님과 함께하는 추억이 시작되었다. 물론 영적으로 물적으로 그저 베풀어주셔서 많은 혜택을 받기만 할 때였고, 신앙과 사람에 대한 목마름을 한없이 채워주시며, 쉼 없는 애정으로 우리를 매료시킨 시기였다. 살레시오 정신으로 무장할 수 있도록 돈보스코의 생애와 맘마 말가리타에 대한 연구, 화란교리서 공부 등 영적인 지도는 물론이고 일탈하기 쉬운 청년들의 생활지도가 함께 이루어졌다. 이미 신부님의 계획대로 살레시오 협력자로서 초기 양성이 시작되었고, 가랑비에 옷이 젖어가듯이 살레시안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올곧고 합리적이지만 배려심 가득한 도요안 신부님은 노동사목위원회에 파견되면서 “살레시오 협력자회 도심지회”라는 이름으로 우리와의 만남도 종로에서 계속되었다. 매달 만나는 협력자들의 모임에서도, 간간이 시간 내어 사무실 일을 도와드릴 때도 함께 한다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합리적 의사결정의 좋은 표상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당시의 추억은 이리도 소중한가 보다.


 당시에 신부님은 신길동 돈보스코센터와 종로 노동사목위원회, 명동 고해소를 종횡무진하는 열혈사제셨다. 살레시오 협력자들과의 월례모임을 통한 정기적인 만남 이외에도 한국의 정서적 공감을 위해 종로에서의 교류, 청년들과 끊임없는 대화를 끌어내는 명동의 저녁 시간을 자주 함께하셨다. 특히 기억나는 것은 포천 피정 겸 MT에서, 수영장의 레이싱으로 젊음을 과시하고, 모닥불 앞에서 함께한 엉거주(?) 춤이다. 그리고 선배 협력자들과 함께 도요안 신부님의 어머님을 한국으로 초청해서 가족의 마음을 나누었던 기억들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뿐만 아니라 외국인노동자 기금 마련 음악회 등 노동사목위원회의 여러 행사에도 초대하셔서 시대의 흐름에서 깨어 있을 기회도 제공하셨다. 이렇게 50대와 60대의 도요안 신부님과 함께한 시간이 종로와 명동에서 흘러갔다.


 보문동에 노동사목회관이 건립되면서 이동하신 도요안 신부님을 따라 협력자들 모임도 삼선동과 보문동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살레시오 협력자회에서도 지회 이름이 도심지회라서 서울 시내의 도시를 이동하게 되나보다 생각했다. 이제 젊은 청년들이 중년의 나이가 되면서 자체적인 동력이 생겨서 협력자 모임은 원활하고 안정적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이는 살레시오 협력자회 사도직 생활계획을 근간으로 평신도 그리스도인, 진리 안의 사랑 등 다양한 영성 서적 학습으로 다져진 영적 지도 덕분이라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지역교회와 협력한다는 살레시안 정신에 따라, 나는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의 전문위원분과에서 봉사하게 되었다. 노동 현장의 모습을 좀 더 가까이 볼 수 있었고, 이를 협력자 형제들과 함께 공유할 기회도 생겨, 어려운 이웃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살레시오 협력자로서의 소명도 더욱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신부님의 잦은 병고 속에서도 협력자들의 양성, 월례모임, 추억들이 계속 이어져갔다. 2010년 11월 6일, 도심지회 협력자들과 영성강화 워크숍을 한 것이 도요안 신부님과 함께한 마지막 기억으로 남았다.


 대개 수도자, 성직자들은 주보성인의 축일을 기념하여 축하드리는 것이 일상이다. 도요안 신부님의 영명축일은 6월 24일 세례자요한 축일이지만 우리 협력자들에게는 3월 1일의 생일을 기념하도록 허락해 주셨다. 진정한 아버지로서의 자리를 제공해 주셨다는 생각이 든다. 신부님의 생신잔치는 살레시오 협력자 및 가족들과 함께하는 축제의 자리였고 즐거운 소풍이었다. 아직도 함께한 장소들을 방문할 때면 신부님과의 추억에 잠겨, 그 고마운 날들을 되새기곤 한다.


 2010년 11월 22일, 안젤라 자매님의 전화로 듣게 된 도요안 신부님과의 지상에서 이별 소식과 함께, 20여 년의 추억들은 가슴에만 남아서 멈추어 버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또 10년이 지났다. 지난달부터 협력자들이 함께하는 묵주의 고리기도는 선종 10주기인 2020년 11월 22일에 끝날 것이다. 그렇지만 신부님이 심어놓으신 씨앗이 자라서, 양성된 초로의 협력자들은 이 세상에 끊임없이 외칠 수 있는 목소리가 생겼다. 영성가로서, 현장의 지도자로서 왕성하게 활동하셨던 도요안 신부님의 전기를 다룬 책 제목 “광야에서의 외치는 이의 소리”처럼!


 내년이면 살레시오 협력자로 서약한 지 30년이다. 살레시오 협력자로서 굳건히 살아가는 저희를 하늘정원에서 흐뭇하게 바라보시며,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로 남아계실 도요안 신부님을 생각하며 다시 마음이 젖어간다. Eternal rest in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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