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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저유소 화재’ 이주노동자 변호인 “스리랑카에선 군인이 기름 지킨다는데…”
관리자 ㅣ 2018-10-16 ㅣ 55

7일 발생한 경기도 고양시 저유소 화재의 원인으로 지목된 ‘풍등’을 날린 이주노동자 ㄱ(27·스리랑카)씨가 “스리랑카에서는 기름을 저장할 때 군인이 지킬 정도로 삼엄하게 경비한다. 설마 이렇게 허술하게 경비도 없이 기름을 보관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ㄱ씨 변호인은 “단순실화죄도 면할 수 있도록 원점에서 화재, 특히 지하 폭발과 풍등 사이의 인과관계를 따질 것”이라고 밝히고 나섰다.


ㄱ씨의 변호를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최정규 변호사는 16일 <한겨레>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며 “ㄱ씨는 회사로부터 저유소에 기름이 저장되어 있고 주의해야 한다는 교육도 전혀 받지 못했다. 예측 가능성이 없다면 과실도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경찰은 화재 발생 다음 날인 8일 ㄱ씨를 중실화(중대한 과실로 인해 물건·건물을 태워 없앤 범죄) 혐의로 긴급체포하고 9일과 10일 두 차례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모두 검찰에서 반려됐다. 검찰은 인과관계와 고의성, 예측 가능성을 비춰볼 때 ㄱ씨가 풍등을 날린 행위를 중실화 혐의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형법상 15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지는 실화(170조)와 달리 중실화(171조)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지는 중범죄다. ㄱ씨는 긴급 체포된 지 48시간 만인 10일 오후 4시30분 풀려났다. (▶관련 기사: “스리랑카 노동자 처벌 부당” 국민 외침에 48시간 만에 석방)


ㄱ씨에 대한 중실화 혐의 적용에 대해서는 법조계에서조차 “과하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한 변호사는 “인과관계가 가장 중요한데, 풍등을 날려 불이 난 게 맞다 치더라도 현장 관리자 등 다른 과실 요소가 없었는지도 따져야 한다”며 “중실화의 ‘중대한 과실’은 조금만 주의했어도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 입증돼야 하는데 쉽지 않고, 그렇다면 사실상 방화나 다름없는데 이 사안을 그렇게 볼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한 검찰 간부는 “어떨 땐 법률가가 아닌 일반인들의 상식이 더 법에 들어 맞을 때가 있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ㄱ씨 체포 직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우지 말라’는 게시물이 잇따라 올라왔다. (▶관련 기사: 풍등 날린 스리랑카인 ‘중대과실’?…법조계도 “과하다”)


경찰 조사 결과와 전문가들의 지적도 이를 뒷받침한다. 9일 경찰 발표를 보면 저유소를 운영하는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쪽은 저유소 탱크 주변에 풍등이 떨어져 잔디밭에 불이 붙은 뒤 탱크가 폭발하기까지 18분 동안 화재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시시티브이(CCTV)을 설치하고도 제대로 보고 있지 않았다는 뜻이다. 공사 쪽은 탱크 안에 생기는 유증기를 자체적으로 제거하는 ‘유증기 회수 장치’와 탱크 주변 화재 감지기도 설치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인화성, 폭발성이 강한 저유소에 화재 예방 시설을 적절히 갖추지 않은 송유관공사와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않은 소방청의 책임이 크다고 꼬집었다. (▶관련 기사: 국가 중요시설이 겨우 풍등에 폭발? 원인은 “방재 부실”)


최 변호사도 15일 <불교방송>(BBS) ‘전영신의 아침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저유소 관리부실을 지적하며 “중과실을 떠나 ㄱ씨에게 과실 자체를 물을 수 있을까에 대한 근본적인 부분부터 따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한인섭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은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삼라만상을 다 억지연관을 시키려면 가능하겠지만, 법률가는 형법적으로 인-과가 연결되는 부분만 취급한다. 이는 형사사법관료에겐 상식 중의 상식”이라며 ㄱ씨에게 성급하게 책임을 돌린 경찰을 질타하기도 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도 같은 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 나와 “(경찰이) 우선 졸속적으로 원인에 대한 근본 분석이 없이 외국인 노동자 한 분한테 정말 다 책임을 (떠넘겼다)”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화재 원인과 관련해 “풍등을 원인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유증기가 화기에 쉽게 노출되는 관리 자체가 문제인지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예측 가능성은 어떻게 봐야 할까. 최 변호사의 말을 종합하면, ㄱ씨는 회사로부터 인근에 저유소가 있고 ‘조심해야 한다’는 교육도 받지 않았다. 최 변호사는 ㄱ씨가 일하던 고양시 덕양구 강매터널 공사현장과 저유소 거리가 멀지 않다(300m)고 지적한 뒤 “바로 보이는 곳에 큰 통이 몇 개씩 있다 보니 ㄱ씨를 포함한 외국인 노동자들끼리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누군가 ‘기름이 든 건가?’라고 말하긴 했지만 추측에 불과했고, 정작 회사로부터는 저유소가 있다거나 주의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전혀 전달받지 못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특히 최 변호사는 “ㄱ씨의 말을 들어보면 스리랑카에서는 기름을 저장할 때 군인이 지킬 정도로 삼엄하게 경비를 한다. 때문에 ㄱ씨는 설마 이렇게 허술하게 경비도 없이 기름을 보관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화재 발생 열흘, ㄱ씨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최 변호사는 “ㄱ씨가 석방되고 이틀 정도 쉬다가 다시 일을 시작했다. 현재 회사에서 마련한 기숙사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15일 <불교방송> 인터뷰에서 “ㄱ씨가 본인이 풍등을 날린 것으로 인해 화재가 크게 난 부분에 대해 상당히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고 또 한국 국민들이 여러 가지 격려를 해준 데에 대해 상당히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ㄱ씨는 10일 석방 당시에도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라며 연신 고개를 숙인 바 있다. ㄱ씨를 돕고 있는 이주노동자지원단체 ‘아시아의친구들’ 김대권 대표는 “향후 경찰 조사를 준비하면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며 짧게 근황을 전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출처 : 2018.10.16 한겨레신문

*해당원본글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660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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