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화]2020년 제106차 세계 이민의 날 교황 담화 관리자 ㅣ 2020-07-30 ㅣ 9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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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2020년 제106차 세계 이민의 날 담화 피신하셔야 했던 예수 그리스도처럼
이러한 특수 분야에서 교회의 사목 활동을 이끌고 장려하려는 목적으로, 교황청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을 위한 부서 산하의 이주사목국에서는 문서 ?국내 실향민에 관한 사목 지침?(Pastoral Orientations on Internally Displaced People, 2020.5.5.)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러하기에 저는 비극적 상황에 놓여 있는 국내 실향민을 위하여 이 담화를 전합니다. 흔히 눈에 잘 띄지 않는 국내 실향민의 비참한 처지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세계적 확산이 촉발한 전 지구적 위기로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실제로 맹렬한 기세로 심각하게 지리적 확산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 위기 탓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타격을 주는 다른 많은 시급한 인도적 위기들이 과소평가되었습니다. 또한 인간 생명을 구하는 데에 근본적이고도 시급히 필요한 국제 원조와 계획들은 국내 정치 의제들 다음으로 밀려났습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마주한 이 위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다른 긴급 상황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로마와 전 세계에 보내는 주님 부활 대축일 메시지, 2020.4.12.). 2020년을 물들인 비극적 사건들을 감안하여, 저는 국내 실향민을 위한 이 담화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때문에 불안하고 내쳐지고 소외당하며 거부당하는 상황에 놓여 있는 모든 이에게도 전합니다. 우선, 비오 12세 교황님의 교황령 「이민 가정」(Exsul Familia, 1952.8.1.)에 영감을 준 표상에서 출발하고자 합니다. 이집트로 피신하신 아기 예수님께서는 당신 부모님과 함께 실향 난민의 비참한 상황을 몸소 겪으셨습니다. 이집트 피난살이는 “두려움과 불확실성과 불안의 시간이었습니다(마태 2,13-15.19-23 참조). 안타깝게도 우리 시대의 수많은 가정이 그와 같은 슬픈 현실에 놓여 있습니다. 텔레비전과 신문에는 기아나 전쟁, 다른 심각한 위험을 피하여 자기 자신과 가족의 안전과 존엄한 삶을 찾아 떠난 난민들의 소식이 연일 보도됩니다”(삼종 기도 훈화, 2013.12.29.). 헤로데 시대에 강제로 피신을 떠나야 하셨던 예수님께서 지금 그들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현존하십니다. 우리는 그들의 얼굴에서 굶주리시고, 목마르시며, 헐벗으시고, 병드셨으며, 나그네이시고, 감옥에 갇히시어 도움을 청하시는 예수님의 얼굴을 알아보라는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마태 25,31-46 참조). 그분의 얼굴을 알아뵐 때에 우리는 그들을 통하여 예수님을 만나 사랑하고 섬길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드리게 될 것입니다. “누더기 옷과 더러운 발, 일그러진 얼굴과 상처투성이 몸을 지닌 채 우리말을 쓰지 못해서 우리 눈이 그분을 알아뵙는 데에 비록 어려움이 따를지라도”(성녀 마르타의 집 미사 강론, 2019.2.15.), 실향민은 우리에게 이처럼 주님과 만날 기회를 줍니다. 우리는 네 동사, 곧 환대하기, 보호하기, 증진하기, 통합하기로 사목 과제에 응답할 것을 요청받고 있습니다. 이 네 동사는 제가 지난 2018년 세계 이민의 날 담화에서 제시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제 저는 이 동사들에 더하여 매우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행동에 해당하는 여섯 쌍의 동사들을 추가하고자 합니다. 이 여섯 쌍의 동사들은 각각 상관관계를 이루며 연결되어 있습니다. 봉사하기 위하여 가까이 다가가기가 필요합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흔히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루카 10,33-34). 두려움과 선입견은 ?수많은 선입견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다른 이들과 거리를 유지하게 만들고, 다른 이들과 ‘이웃이 되는’ 것을, 그리고 사랑으로 그들에게 봉사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최근 몇 개월간 많은 의사와 간호사가 가르쳐 주었듯이, 다른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은 흔히 위험을 기꺼이 감수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가까이 다가가 봉사하는 일은 단순한 의무감을 넘어서는 행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한 가장 위대한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겉옷을 벗고 무릎을 꿇어 당신 손이 더러워져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당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요한 13,1-15 참조). 화해하기 위하여 귀 기울이기가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이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인간의 귀로 인류의 탄식을 듣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셨다”(요한 3,16-17). 화해와 구원을 가져다주는 사랑은 귀 기울이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더욱더 많은 메시지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경청의 자세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겸손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경청을 통해서만 참으로 서로 화해할 수 있습니다. 2020년에 몇 주에 걸쳐 길거리는 적막에 잠겨 있었습니다. 긴장이 맴도는 불안한 침묵, 그러나 이 침묵은 더 힘없는 이들, 실향민들, 심각하게 병든 우리 지구의 울부짖음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마련해 주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귀를 기울이면서, 우리는 이웃과, 버림받은 수많은 이들과, 우리 자신과 화해할 기회를 갖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하느님과도 화해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성장하기 위하여 함께 나누기가 필요합니다. 나눔은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본질적인 요소였습니다.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사도 4,32). 하느님께서는 우리 지구의 자원들이 소수에게만 유익한 것이 되기를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함께 성장하려면 함께 나누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감염증의 세계적 확산으로 우리는 모두 한배를 탄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같은 걱정거리와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는 깨달음을 통하여, 그 누구도 혼자 구원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명약관화해졌습니다. 참으로 성장하려면, 예수님께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어 드린 그 아이처럼 우리가 가진 것을 함께 나누면서 다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오천 명이 배불리 먹기에 충분했습니다!(요한 6,1-15 참조) 발전하기 위하여 참여하기가 필요합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그렇게 하셨습니다(요한 4,1-30 참조). 주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 여인의 말을 들어주시고 진심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리하여 그 여인을 진리로 이끄시어 그 여인이 다음과 같이 기쁜 소식의 선포자가 되게 해 주십니다. “제가 한 일을 모두 알아맞힌 사람이 있습니다. 와서 보십시오.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니실까요?”(요한 4,29) 이따금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봉사하려는 열정에 가려 다른 이들이 지닌 진정한 풍요로움을 보지 못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참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그들을 참여시키고 그들이 그들 자신의 구원에 능동적으로 이바지하게 해야 합니다. 감염증 확산은 우리에게 공동 책임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또한 흔히 무시당하는 이들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의 기여가 있어야만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는 사실도 일깨워 주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부르심을 받았음을 느낄 수 있는 자리들을 만들고 새로운 형태의 환대와 형제애와 연대를 도모하는 용기를 가져야”(성 베드로 광장에서의 묵상, 감염증 확산 시기 특별 기도, 2020.3.27.) 합니다. 건설하기 위하여 협력하기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공동체에게 한 권고입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모두 합심하여 여러분 가운데에 분열이 일어나지 않게 하십시오. 오히려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하나가 되십시오”(1코린 1,10). 하느님 나라의 건설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공동 임무이기에, 우리는 질투나 반목이나 분열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협력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현 상황에서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지금은 이기심을 내세울 때가 아닙니다.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도전 앞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일치단결해야 합니다”(로마와 전 세계에 보내는 주님 부활 대축일 메시지). 우리 공동의 집을 보호하고 태초에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그 모습에 더욱 맞갖게 만들어 나가려면, 우리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국제 협력과 전 세계적 연대와 지역적 책무 이행을 보장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아기 예수님을 구하고자 이집트로 피신해야 했던 요셉 성인의 모범에서 영감을 얻은 기도로 저는 이 담화를 마치고자 합니다. 하느님 아버지, 권력자들의 박해를 피해 떠나야 하는 고통을 겪은 요셉 성인이, 요셉 성인의 전구로 예수님을 친아들로 사랑하고 삶의 모든 것을 빼앗긴 이들이 요셉 성인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충실한 배필로 동정 마리아를 사랑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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